오하이오 볼링 그린 주립 대학교의 한 건물에서 릴리안 기쉬의 이름이 삭제되었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릴리안 기쉬(Lillian Gish, 1893~1993)
릴리안 기쉬(Lillian Gish, 1893~1993)는 미국의 여배우입니다. 그녀는 무성영화와 초기 기간의 영화에서 두각을 나타내었으며, 그 중에서도 덕수궁 독립영화관에서 상영되는 작품으로 잘 기억되고 있습니다.
릴리안 기쉬는 고전 영화 팬들에게는 무성영화 시대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여배우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녀의 연기는 특히 무성영화 시대의 표정과 감정 연기를 대표하는 것으로 평가되며, 그 중에서도 “클로즈업은 릴리안 기쉬의 얼굴을 찍으려고 만든 것이다.”라는 유명한 인용구가 따라다니기도 했습니다. 또한, 그녀는 1999년에는 AFI(미국 영화연구소)가 선정한 위대한 배우 25인 중 17위에 등재되기도 했습니다.
국가의 탄생(The Birth of Nation)
D.W. 그리피스는 미국 영화 역사 초기에 두각을 나타낸 감독 중 하나로, 그의 촬영과 연출 능력은 아직도 영화사를 공부하는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수준입니다.
남북전쟁 이전, 북부 자본가인 스톤맨 가문의 장남 필은 남부 노예주인 카메론 가문의 딸 마가렛과 사랑에 빠지고, 카메론 가문의 아들 벤은 스톤맨 가문의 딸 엘시를 짝사랑합니다.
남북전쟁이 터지고 스톤맨 가문의 남성들과 카메론 가문의 남성들은 북부와 남부를 위해 싸우고, 많은 이들이 죽습니다. 벤은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되어 엘시를 만나고, 링컨과 대면한 그녀의 도움으로 교수형당할 위기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연방 대통령 링컨이 암살되고, 공화당의 급진파들은 남부를 궤멸시키기 위해 급진적인 법안을 상정하여 전후 처리를 주도합니다. 공화당의 재건 정책에 따라 남부에서 많은 흑인들이 선거권을 가지고 의원에 선출되는 반면, 백인들은 선거권을 박탈당하고 흑인들에게 자리를 내주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벤은 분노에 찬 마음을 품고 아이들이 하얀 두건을 뒤집어쓰고 노는 모습을 보고 “Ku Klux Klan(KKK단)”을 창설합니다. KKK단은 흑인들을 린치하며 점점 성장하게 되고, 이는 카메론 가문의 여식인 플로라가 희롱을 당한 후 절벽으로 투신해 죽은 사건 이후 더욱 강해집니다.
KKK단이 성장하자 연방군은 이들을 추적하여 체포하기 시작하고, 이 과정에서 벤의 아버지인 카메론 박사가 KKK 상징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이유로 체포됩니다. 북부 출신인 스톤맨은 사건에 연루되지 않기 위해 피신을 결정하지만, 그의 딸 엘시는 재건 담당관이자 흑백 혼혈인 린치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린치는 엘시를 탐하고 희롱하지만, 이때 벤이 KKK단을 이끌고 나타나 엘시를 구출합니다. 이후 벤은 엘시와 결혼하게 되며 끝납니다.
영화가 말하는 인종관련 이슈
위의 내용에서 눈치채셨겠지만, “국가의 탄생(The Birth of a Nation)”은 남북전쟁 전후 남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 시대에는 KKK단이 단순한 인종차별 집단으로 비난되며, 공화당 급진파가 주도한 흑인 참정권 정책을 비판하는 등의 시각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또한, 영화 내의 대다수 흑인 캐릭터들이 무식하게 묘사되고 있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논란과 동시에 엄청난 흥행을 했습니다. 미국 대통령인 우드로 윌슨이 해당 영화를 번개로 쓴 역사와 같고, 끔찍한 것은 이게 전부 사실이라고 언급한 것은 더 큰 논란을 초래했습니다. (현재는 우드로 윌슨이 인종차별주의자는 맞지만, 해당 발언을 한 적은 없다는 게 정설입니다.)
특히, 영화에 ‘엘시’ 역으로 나온 릴리안 기쉬는 현대에 들어와서 인종 차별을 다룬 작품에 출연하면서 비난을 받게 됩니다. D.W. 그리피스와의 친분이 깊어서인지 죽을 때까지 “국가의 탄생”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표한 적이 없었습니다.
오하이오 볼링그린주립대학교의 최근 입장
오하이오 볼링 그린 주립 대학교는 릴리안 기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대학 내 극장에 그녀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인종 갈등이 심화되면서 학생들의 요구에 따라 그 이름을 철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결정에 대한 찬반 의견이 존재하며, 유명 배우 헬렌 미렌, 감독 마틴 스콜세이지 등은 서한을 통해 릴리안 기쉬의 이름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릴리안 기쉬가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 뛰어난 여배우였다며, 업적을 인정하고 기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합니다.
릴리안 기쉬에 대한 입장은 “현재의 가치관과 과거 인물의 업적이 충돌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는 BLM 시위 중에 조지 워싱턴 동상이 “노예주”로 비판되며 인물에 대한 평가와 대우에 대한 논쟁이 나타났던 사례와 유사합니다. 즉, 역사적 인물의 행적과 현대의 가치관 간의 갈등으로 인해 어떻게 기리고 다룰지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인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