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종교수가 존경하는 인물 의료계의영웅

윤한덕 응급의료


이국종교수는 아덴만전투에 참여하고 국내 외상의학에서 유명합니다. 현재는 아주대 교수직을 하고 있으며 외상외과 관련직은 그만두었습니다. 현재 센터장은 제자인 정경원이 하고 있습니다. 권역외상시스템에 엄청나게 노력을 한 인물이고 현재는 전국의 권역당 외상센터가 지어지고 있습니다. 이노력은 이국종 교수만의 일이 아닙니다.

이국종이 존경한 인물

윤한덕 응급의료

윤한덕은 1968년에 해남에서 태어나 3남 4녀 가운데 장남으로 자랐습니다. 어린 시절을 해남에서 보낸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의 직장 이전으로 인해 광주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1983년, 윤한덕은 전남 지역에서 명문고로 알려진 광주제일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기술에 대한 흥미가 많아 라디오를 분해하고 조립하는 등 다양한 활동에 참여했고, 학업 성적 역시 뛰어났습니다. 그러나 가정 사정이 어려워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 가는 것을 원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윤한덕은 아버지의 바람에 따라 집안에 의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따라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의예과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진학을 원하지 않았고 의대 공부에 큰 흥미가 없었던 윤한덕은 휴학이나 의대 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운 면도 있었습니다.

윤한덕 응급의료

전남대병원

윤한덕은 본과 과정을 마치고 전남대학교병원에서 응급실 인턴으로 근무하면서 수많은 죽음의 순간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이 경험이 그에게 큰 영향을 끼쳐 의학에 대한 열정을 키우게 되었고, 그는 나중에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의학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교통사고로 차에 깔려 응급실에 실려온 어린 아이를 살리지 못한 비참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응급의료 체계가 완전히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지역에서 제일 큰 병원인 전남대병원으로 응급환자를 보내는 것이 관행이었고, 결과적으로 환자들이 한 곳에 몰리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응급환자들을 다른 병원으로 전원하는 일이 반복되었고, 가장 큰 문제는 전문의 부족으로 어린 생명이 소중하게 떠나가게 되었습니다.

윤한덕 응급의료

이러한 비극적인 사건을 겪은 윤한덕은 응급의료체계의 개선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발생하면서, 1995년에 응급의학과 전문의 선발이 시작되었고, 1998년 군 복무를 마친 후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에 응급의학과 전문의로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윤한덕은 2002년에 중앙응급의료센터 응급의료기획팀장으로 선임되어 행정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응급의료 시스템을 통합하고 전산으로 관리하기 위해 노력하며, 직접 컴퓨터를 다루면서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그의 노력 덕분에 응급의료 시스템은 향상되었고, 환자들에 대한 더 나은 응급조치가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국가응급의료진료망 NEDIS

윤한덕 응급의료

이렇게하여 2003년에 국가응급의료진료망(NEDIS)의 등록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응급의료에 대한 아무런 개념이 없었던 상황에서, 윤한덕은 환자 동선 및 환자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는 국가응급진료정보망을 기획하고 개발하여 구축했습니다. 이 시스템은 전국의 응급의료기관으로부터 전송되는 진료 관련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하는 역할을 하며, 각 병원에서 제공되는 응급의료 정보를 통합하여 중앙응급의료센터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119 구급대도 이 정보를 활용하여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응급의료 전용 헬기

윤한덕 응급의료

또한, 재난현장의 응급의료체계를 확립하고 2003년부터 응급의료기관 평가제도를 시행하게 되었습니다. 윤한덕은 응급의료전용헬기 사업에도 매진하여 2011년부터 응급의료 전용헬기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윤한덕 응급의료
가장 왼쪽의 윤한덕

이런 업적을 쌓은 결과로, 2012년에는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에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2015년 5월 20일에는 메르스 1번 환자를 국립중앙의료원에 전원했을 때, 윤한덕은 메르스 대응 및 기획반장으로 메르스 사태를 총괄 지휘했습니다. 메르스 균을 차단할 수 있는 음압 병상과 음압 구급차를 구상하고 만들어 의료원에 감염자가 발생하지 않게 했습니다. 국립중앙의료원이 메르스 중앙거점 의료기관으로 지정된 이후, 67명의 환자를 단 한 명의 추가 감염 없이 진료했습니다.

윤한덕 응급의료

(사진은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윤한덕은 전국에 17개 권역외상센터를 설치하는 사업에 참여하고 응급의료종사자 전문화 교육에 앞장서며 기여하였습니다. 그의 노력으로 권역외상센터가 전국적으로 설치되었고, 닥터헬기의 도입으로 인해 예방 가능한 사망률이 크게 감소했습니다.

메르스당시 업적

윤한덕 응급의료

2015년에는 30.5%, 2017년에는 19.9%, 2019년에는 15.7%까지 떨어진 것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이는 윤한덕의 꿈이었던 ‘예방 가능한 사망’의 감소가 현실에서 실현된 지표로 증명되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의 노력으로 전국 각지에서 응급의료 시스템이 향상되고, 많은 환자들의 생명이 보호되었습니다.

윤한덕 센터장의 사망

2019년 설 연휴 기간인 2월 4일, 국립중앙의료원의 센터장인 윤한덕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그의 나이는 단 51세였습니다. 윤한덕은 ‘업무상 과로사’로 진단되었으며, 그의 책상 위에는 ‘지역외상체계 태스크포스(TF)’의 거버넌스 조직도가 놓여 있었습니다. 윤 센터장은 응급의료체계 발전을 위해 노력하며, 주말 밤에 퇴근해 월요일 새벽에 출근하는 등 많은 시간을 일에 투자했습니다.

숨기기 힘든 만큼의 열정과 헌신으로, 윤 센터장은 일주일간 129시간 30분, 3달 동안은 평균 118시간 42분을 근무했습니다. 그는 만성 과로로 인정받는 주 60시간의 기준을 훌쩍 넘어섰습니다.

윤한덕은 응급의료체계뿐만 아니라 재난응급의료상황실 업무에도 관심을 가졌으며, 그의 사무실 책상 위에는 자문한 어린이용 만화책과 닥터헬기 모형이 놓여 있었습니다.

2008년 겨울, 이국종 교수가 윤 센터장을 찾았을 때 윤 센터장은 응급의료체계의 문제점을 이국종 교수에게 물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이국종 교수의 답변에는 냉소와 함의가 담겨있었습니다. 이후 이국종 교수는 그를 통해 윤한덕이 평정심을 유지하며 열정적으로 일해온 모습을 발견했고, 윤 센터장 또한 응급의료 발전의 사명을 실천하기 위해 지속적인 헌신을 보여왔습니다.

그러나 윤한덕은 자신을 눈에 띄게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묵묵히 일을 하고,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며, 외부로 노출되기를 극도로 싫어했습니다. 그는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았으며, 그의 목표는 단순히 환자들이 빠르게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머릿속에는 환자를 돌보기 위한 생각 외에는 아무런 것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지막까지 열정과 헌신으로 응급의료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윤한덕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 중 하나였습니다.

이국종 교수의 책 “골든아워”에서 “윤한덕”이란 챕터를 통해 약간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윤한덕 자신은 자신을 과대포장한 것이라며 오히려 쑥스러워했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존재가 누구에게 알려지는 것보다는 환자를 위한 의사로서의 사명이었습니다.

윤한덕은 아내, 아이들, 어머니, 형제들조차 그가 응급의료에서 큰 역할을 한 것을 몰랐습니다. 그의 사후에야 언론을 통해 많은 일을 했다는 것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그는 응급의료체계 구축이라는 큰 목표를 향해 노력하며, 마지막까지 열정과 헌신으로 일했습니다.

이국종 교수는 윤한덕의 영결식에서 추도사를 통해 그를 “한반도 전체를 들어 올려 거꾸로 흔들어 털어 보아도, 선생님과 같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두려움 없이 헤쳐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며 칭찬했습니다. 대한응급의학회와 다른 의료전문가들도 윤한덕을 진정한 리더로 평가했습니다.

윤한덕 응급의료

윤한덕은 2019년 4월 7일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고, 8월 13일 정부는 응급의료정책 발전에 기여한 그의 공로를 인정해 국가유공자로 지정했습니다. 마지막까지 환자를 위해 일한 윤한덕의 모습은 그의 소원이었던 “응급환자가 제 때 치료받는 세상”을 향한 헌신의 결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