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발단
2001년 10월 2일, 새벽 2시 30분. 그때 당시, 전세계는 아직 911 테러의 여파로 충격과 공포에 휩싸인 상황이었습니다. 이 어수선한 상황에서 한 남자가 응급실로 고열과 구토감을 호소하며 찾아왔습니다.
그의 이름은 로버트 스티븐스씨이며, 그는 ‘아메리칸 미디어그룹’ 소속 대중지 ‘선’의 사진부장. 고통에 시달리는 그를 응급실 의료진들은 그가 뇌수막염 의심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판단, 추가 검사를 시행했습니다.
다음날,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그의 증상의 원인은 바로 “탄저균”이었습니다. 즉각적으로 보건 당국에 탄저균 발병 소식이 전해지고, 그가 근무한 곳은 급작 폐쇄되었습니다.
스티븐스의 증세는 심각한 정도로 악화되었고, 병원에 입원한 지 4일 만에 그는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1976년 이후 25년 만에 미국에서 발생한 탄저병으로 인한 사망 사례로, 미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더 큰 공포에 몰아넣게 된 ‘탄저균 테러 사건’의 첫 번째 희생자가 되었습니다. 백색 가루로 인한 두려움이 시작입니다.
탄저균의 발생이 미국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특별한 일상에서 두드러진 유일한 사건은 스티븐스가 며칠 전 사무실로 배달된 정체불명의 소포를 열어봤다는 사실뿐이었습니다. 그 소포 안에는 치명적인 탄저균이 들어있었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탄저균은 극소량으로도 매우 치명적인 생화학무기로 사용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전 세계 143개국이 탄저균 사용을 금지하는 협약이 체결되었습니다. 탄저병은 피부형, 소화기형, 호흡기형으로 나뉘는데 특히 호흡기형은 초기에 항생제를 투여하지 않으면 치사율이 무려 80~95%에 달해 극도로 치명적입니다.
스티븐스의 사망은 미국에서 이어진 7년 동안의 탄저균 사건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그 후 미국 곳곳에서 탄저균이 담긴 편지나 소포가 발견되었고, 뉴욕에서는 유명 언론사가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NBC 방송 간판 앵커였던 톰 브로코의 비서 에린 오코너가 피부형 탄저병에 감염이 발생했습니다. 뉴욕타임즈의 테러 전문기자인 주디 밀러스 역시 탄저균이 담긴 소포를 받았습니다. 뉴욕타임즈는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일부 페이지를 발행하지 못하고 비상 조치를 취했습니다.
미국 민주주의의 중심지이자 국회의사당도 안전지대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10월 12일과 11월 16일, 약 한 달 간격으로 당시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였던 ‘톰 대슐’ 의원과 당 상원 법사위원장인 ‘패트릭 리히’ 의원의 사무실에 수상한 백색 가루가 담긴 상자가 도착했습니다.
이 두 소포는 유사한 방법으로 전달되었습니다. 두 소포는 뉴저지주 주도 트랜턴 집배신센터에서 발송되었으며, 미국 안보를 위협하는 내용의 편지가 동봉되어 있었습니다. FBI는 두 의원이 받은 편지의 필체가 유사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두 의원에게 전달된 탄저균의 종류는 이전 사건에서 FBI가 수집한 것과 약간 다르다고 보고되었습니다. 뉴욕타임즈는 대슐과 리히 의원의 사무실로 온 우편물 속의 탄저균이 공기 중에 포자를 통해 전파된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는 고도의 정제 과정을 거치면서 살상 능력이 높아졌습니다.
이러한 사태로 인해 12월까지 미국에서는 5명이 탄저병으로 사망하고 17명의 중환자가 발생했습니다. 생후 7개월의 갓난아이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짧은 기간 동안에 이미 20세기 동안 미국에서 발생한 탄저병 규모를 뛰어넘는 상황이었습니다.
죽음의 백색 가루를 누가 보냈을까?
가장 먼저 용의자로 지목된 단체는 알카에다의 수장인 ‘오사마 빈 라덴’ 등의 이슬람 테러 조직이었습니다. 미국이 911 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아프간에 군사 개입 중이었기 때문에, 이슬람 테러범들이 생화학 무기를 사용하여 미국에 보복했다고 추측했습니다.
이 추측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탄저균 피해자들이 받은 편지에는 “미국과 이스라엘에 죽음을”, “알라는 위대하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또한, 미국과 동맹국을 비난하고 이슬람을 찬양하는 내용이 도드라졌습니다. 편지 내의 몇몇 철자 오류는 범인이 미국인이 아닐 가능성을 시사했습니다.
다른 의견으로는 언론사와 다국적 기업이 테러의 공격 대상이 된 것에 주목하는 시각도 나타났습니다. 911 테러의 주요 대상이었던 미 국방부 청사와 세계무역센터가 미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상징한다면, 언론사와 MS를 겨냥한 탄저균 살포는 ‘미국 문화’에 대한 테러로 규정했습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알카에다 배후설을 공개적으로 제기했습니다. 당시 부통령이었던 딕 체니는 “빈 라덴은 지난 몇 년 동안 대량살상 무기를 획득하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언급하여 알카에다와 탄저균 테러와의 관련성을 시사했습니다. 이로 인해 미국 내외의 이슬람 신자들은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로 취급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스티븐스가 근무한 매체의 구독자 중 중동식 이름을 가진 사람들까지도 수사 대상에 포함되었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과학적인 증거들은 범행이 미국 내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을 가리켰습니다.
전문가들은 미국에서 발견된 편지 속 탄저균 성분이 중동 지역과는 다른 것에 주목했습니다. 미국 과학자 연맹의 바버라 로젠버그 박사는 “의회에 전달된 편지의 탄저균에는 이란 등에서 사용하는 ‘벤터나이트’ 대신 미국에서 사용하는 ‘실리카’가 들어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탄저균의 유전자 배열과 특성을 고려할 때, 미국 내에서 생산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결국, 2001년 12월까지 미국의 대 탄저균 테러 담당이었던 FBI는 국내로 수사 방향을 변경했습니다. 수사는 빠르게 진행되었고 FBI는 과학자 등 9,100명을 인터뷰하고 6,000건 이상의 대배심 소환장이 발부되었습니다. 25만 달러의 현상금이 걸린 결과, 미국 내에서 탄저균 포자를 제조할 수 있는 연구원 25명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됩니다. 그리고 2005년 4월, 사건 발생 3년 6개월 만에 FBI는 단 한 명의 용의자로 브루스 아이빈스 박사를 추적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빈스는 메릴랜드주 미 육군 생화학 전연구소에서 근무하며 범행을 저질렀다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2008년 연방법원이 공개한 수사기록에는 FBI가 “기울어 가는 연구와 망상증에 시달리던 탄저균 전문가”로 묘사한 대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신 병력이 있던 아이빈스 박사가 자신이 개발한 탄저균 백신이 부적격 판정을 받자, 홧김에 범행을 저질렀을 수 있다는 가설이 제시되었습니다. 당시 연방검사인 제프리 테일러는 아이빈스 박사가 자신이 개발한 탄저균 백신의 필요성을 강조하려는 시도나,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임신중절 찬성론자인 대슐ㆍ리히 의원을 노리려 했을 가능성을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의혹에 대한 신뢰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습니다. 수사당국이 공개한 대부분의 자료는 ‘정황 증거’에 그치고 있었습니다. 뉴욕 타임스는 “해당 연구실에서 변종 탄저균에 접근할 수 있었던 연구원이 10명 이상인 데다 그가 탄저균 우편물을 발송했다는 명백한 증거도 없다”고 비판하였습니다. 아이빈스 박사에 대한 혐의는 유죄로 입증하기에는 부족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수사와 증거 부족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지만, 법원의 심리를 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2008년 7월 29일, 아이빈스 박사는 검찰 기소를 일주일 앞두고 자살하였습니다. 이는 심리적 압박으로 분석되었습니다. 2011년에는 FBI가 “일부 과학적 의문이 남아 있긴 하지만 유죄 증거가 압도적”이라 주장하며 수사를 공식 종결하였습니다.